asoboi
도입 경위 메이지 말기인 1911-13년에 급행열차 견인용 대형 여객열차용기로서 영국·독일·미국 각국으로부터 차축배치 2C의 8700형·8850형 및 2C1의 8900형이 수입되었고, 1912년 6월에는 이들을 사용해 신바시 - 시모노세키간에 특별급행이 운행되게 되었다. 한편, 당시의 운수 상황에서는 이들보다 약간 소형으로 급행열차도 견인 가능한 여객용기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규슈·간사이·토호쿠·오우의 각 선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기체로서 8800형 등을 참고로 일본의 증기기관차 국산화 기술의 확립을 목적으로 하여 본 항에서 기술하는 8620형이 도입되었다. 범용성을 중시하여 향후 수송량이 증가했을 때에는 지방선구로 전용하는 것을 고려하여 설계되었다. 보일러는 베이스가 된 8800형 등에서는 80.5km/h(50 mph)에서의 연속주행에 대응한 연속증발량을 확보할 수 있는 대형을 탑재했지만, 본 형식의 운행이 상정된 2급 간선 급행열차는 연속주행속도 64.4-72.4km/h(40-45 충분하게 탑재된 것 등, 소형 보일러의 2급 간선 급행열차는 연속주행속도 64.4-72.4km/h(40-45보다 약 8할 용량을 탑재한 것으로, 2급량보다 약 8800형인 만큼의 보일러를 탑재한 것. 주행장치는 동륜직경을 8800형과 같은 1600mm, 실린더직경도 같은 470mm로 급행여객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충분한 점착중량을 확보함과 동시에 선형이 나쁘고 구배도 많은 2급 간선에서의 운용에 대응하기 위해 동축을 3축으로 하는 한편 당시의 여객용기는 선대차를 궤도에 대한 추종성을 고려하여 2축 보기식으로 하는 것이 통례였기 때문에 보일러의 소형화에 의한 중량감소 대응으로서 본 형식에서는 차축배치 2C의 8800형에서 선대차를 궤도에 대한 추종성을 고려하여 2축 보기식으로 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보일러의 소형화에 의한 1륜대차축과 대차축의 소형화에 의한 중량감소를 하였다. 다이쇼기에 있어서의 기관차의 설계는, 주요 치수를 정하는 개요 설계는 철도원·철도성에서 행해져, 상세 설계는 철도성에서 실시하는 경우와 메이커에서 실시하는 경우의 양쪽 모두가 있어, 예를 들면 6700형이나 C51형은 철도원·철도성에서, 9580형이나 9600형은 메이커에서 상세 설계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본형식은 D50형등과 함께 일부를 철도성, 일부 메이커에서 실시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음. 또 제조는 당초 1913-19년도 발주 분은 기차 제조 회사가 담당했고(한편 9600형은 1917년도에 자동차 제조 업체에 발주될 때까지는 카와사키 조선소만 만들고 있다. 이후 1920년도 발주 분부터 히타치 제작소와 가와사키 조선소가 1921년도 발주 분부터 일본 차량 제조가 1924년도 발주 분부터 미츠비시 조선이 각각 제작에 참여하고 1925년도까지 총 670량칸을 열어 1928년도에 2량이 발주됨. 또한 이 중의 히타치 제작소 립호 공장과 미츠비시 조선 코베 조선소는 제일차 세계 대전 종전에 따른 조선업 불황을 계기로 새로 기관차 제조에 참가한 것이다, 히타치 제작소 립호 공장은 당초 철도부에서 기관차의 발주를 얻지 못했기 때문, 8620형을 자주 만들어 제조 능력을 보이고 그 후 수주에 연결하고 있으며, 고베 조선소는 미츠비시 광업 비바이 철도의 2-4호기 제조 실적이 있고, 공기 브레이크 장치의 제조소이기도 했기 때문에 수주를 얻게 되어 있다. 개요 보일러 보일러는 베이스가 된 8800형의 것보다 2회 정도 작은 것으로, 화격자 면적은 12.5%축소한 1.63 m2(17.5 m2), 내경은 76 mm(3 in) 작은 1245 mm(4ft 1 in), 연관 길이는 610 mm(2 ft) 짧은 3692 mm(2 ft). 또, 보일러 중심고는 8850형과 동일한 2438 mm(8 ft), 기관차 중심 높이는 8850형의 1521 mm나 9600형의 1532 mm를 넘는 1557 mm인 것 외에, 굴뚝 중심이 실린더 중심보다 168 mm(72-5/8 인치) 전방으로 어긋나 있다. 8800형 등에 이어 슈미트식 과열기를 장비하고 있으나 본 형식은 과열증기의 온도 확보를 위해 전열면적에서 차지하는 과열면적의 비율을 9600형 등까지의 기관차보다 크게 한 것이 특징이다. 슈미트식 과열기의 개발원인 독일의 슈미트과열증기회사에서는 적절한 온도의 과열증기를 얻기 위해 대장관 외경, 소장관 외경, 과열관 외경의 조합별로 소장관과 대장관의 갯수 권장비를 정하고 있어 본 형식의 경우에는 7.54였다. 그러나 8800형 및 8850형에서는 권장치 5.28인 바, 실제 기기는 각각 6.43, 6.29로 대연관의 개수가 약간 적은 정도였으나 과열 증기의 온도가 통상적으로는 300°C를 넘지 못하고 당초 이 원인에 대해서는 협화실에서 내화실이 가늘고 길기 때문에 화실에서의 전열이 크고 과열관의 온도가 통상적으로는 300°C를 넘을 수 없었기 때문에 대형 화관에서도 300°C를 초과할 수 있기 때문에 권장치보다 작다고 생각되고 있기 때문에 화열은 그 만큼 작다고 생각되고 있기 때문에 화관에서는 전열이 그 만큼 작기 때문에 10°C가 작다고 판단된다. 이에 본 형식에서는 대연관을 슈미트사가 권장한 14개에서 18개, 연관 갯수/대연관 갯수 비율을 슈미트사가 권장한 값의 7.54에서 5.56으로 과열 면적을 확대하여 300°C를 넘는 과열 증기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1915년 시운전에서는 340°C에 이르렀다. 본 형식의 실적을 통해 철도성에서는 새롭게 과열면적/전체 증발면적비를 새로운 지표로서 보일러 설계에 이용하고, 이 수치를 본 형식의 0.310을 기초로 약 0.3 이상을 목표로 하게 되어, 예를 들면 9600형에서도 9658호기 이후는 대장관 갯수를 늘려 이 값을 0.264로 하고 있다. 1914년도에 발주한 8644호기 이후 (8672호기 이후로 하는 문헌도 있다.)는 연기실의 통풍 개량을 위한 설계 변경이 실시되었고 배기 노즐의 끝이 368mm(14-1/2in)를 내림과 동시에 굴뚝이 51mm(2in) 확대하여 첨단부의 내경이 406mm(16in)부터 457mm(1/2in)를 내경으로 하는 동시에 굴뚝이론(굴뚝이론(굴뚝)과 동일하게 적용되어 시행된 결과물도 있다. 또, 당초에는 연기실 내 과열 장치 앞부분에 타행 중인 과열관의 과열 방지나 역행 중인 과열 증기의 온도 과상승 방지를 위한 과열기 댐퍼를 장비하고 있었지만,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과열 온도가 300°C를 넘는 정도였기 때문에 1922년경 제조분부터 이를 폐지했다. 주행 장치